중드 넷플릭스 조춘청랑 원작 소설 번역 제1화

셀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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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청랑

제1화 비 내리는 도시

그해 베이징에는 예년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심지어 상즈타오가 이제 막 떠나온 남쪽 지방보다도 더 많이 내렸다.

비는 부슬부슬 끊임없이 내렸고, 구름 위로는 희미하게 물안개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이 풍경을 운치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쓸쓸하고 서늘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즈타오는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붙들고 한창 씨름하고 있었다.

한 가방에는 책이 가득했고, 다른 가방에는 옷과 신발이 가득했다. 그게 전부였다.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스물두 살의 그녀는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먼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을 해냈다.

이마와 뺨에는 촘촘하게 땀방울이 맺혔고, 얼굴은 열기로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상즈타오는 이러다 자신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내일은 꼭 선풍기 하나 사야겠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비좁은 칸막이방은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 때문에 더욱 좁아졌다.

그때 옆방 여자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말에는 내가 너한테 갈까? 내 옆방에 누가 이사 왔거든. 여기 방음이 별로 안 좋아.”

상즈타오는 잠시 생각한 뒤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자신이 이사 왔으니, 이제 옆방에서는 전화 통화조차 마음 놓고 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었다.

상즈타오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움직임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했다.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학교 선배 야오베이(姚蓓)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해야 해. 어딜 가든 다들 저마다 힘든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상즈타오는 이제야 선배가 말했던 ‘힘들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원래 상즈타오는 졸업한 뒤 남방(南方)에 남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모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살게 된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그녀는 이력서를 전부 베이징에 있는 회사들로 보냈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대학을 졸업한 자신이 이 회사의 특별 오퍼(特别offer)를 받았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흥분될 만큼 기쁜 일이었다.

상즈타오는 자신이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짐을 모두 정리한 뒤 작은 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야 상즈타오는 이 방이 얼마나 허름한지 깨달았다.

처음 인터넷으로 방을 알아볼 때 중개인이 사진 몇 장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줬었다.

사진만 봤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텅 비고 아무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방에는 꽃무늬 침대보가 덮인 침대 하나를 빼면 변변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상즈타오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두 다리를 세웠다.

노트를 꺼내 내일 사야 할 물건들을 진지하게 적기 시작했다.

앞으로 밥도 해 먹어야 했다.

그녀에게 있는 조리도구라고는 학교에서 가져온 작은 전기냄비 하나와 밤의 친화이(夜秦淮) 풍경이 그려진 그릇 하나뿐이었다.

옷도 빨아야 했다.

하지만 셋집의 공용 세탁기는 선뜻 사용하기가 꺼려졌다.

학생 시절에는 자기 생활을 꾸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 써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하루에 그동안 하지 않았던 걱정을 한꺼번에 다 하는 것 같았다.

막상 하나하나 신경 쓰기 시작하고 보니 깨달았다.

사는 일이란 이렇게 자질구레한 것들의 연속이구나.


노트는 세 페이지나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런데 그 세 페이지에 적힌 글자들이 상즈타오의 눈에는 전부 한 글자로 변해 보였다.

돈.

전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돈이 조금은 있었다.

대학 시절 근로장학식으로 일하며(勤工俭学)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라오상(老尚)이 혼자 살면서 고생할까 걱정했는지 은행에서 그녀에게 1만 위안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상즈타오는 그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다시 첫 번째 줄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당장 필요한지, 어떤 것은 조금 기다려도 되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뒤쪽에 새로운 분류를 만들었다.

近日买 — 조만간 살 것

第一次发工资买 — 첫 월급 받으면 살 것

第二次发工资买 — 두 번째 월급 받으면 살 것

쓰다 보니 문득 자기 모습이 조금 우습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상즈타오는 노트를 옆으로 던져버리고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그러고는 킥킥 소리 내어 웃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고 행동도 그리 침착하지 못한 그녀는,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管他呢!

에라, 모르겠다!


상즈타오는 자신이 꽤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용기는 깊은 밤이 되자 조금씩 사라졌다.

그녀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여행가방을 문 앞으로 밀었다.

여행가방 두 개를 겹쳐 쌓아 문을 빈틈없이 막았다.

시간이 흐르자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꾹 참았다.

눈을 꼭 감고 양을 세기 시작했다.

소변이 마려운 느낌과 두려움은 졸음과 싸우고,

용기와 나약함은 몸속에서 번갈아 북을 두드렸다.

独在异乡为异客的第一个夜晚,无比的漫长。

타향에서 홀로 이방인이 되어 맞는 첫날밤은 끝없이 길었다.


베이징에서의 둘째 날

다음 날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에서 깬 상즈타오는 자신이 사는 셋집 근처에 농산물시장(农贸市场)이 하나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제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봐두었던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자잘한 생활용품을 좀 사기로 했다.

우비를 입고 여행가방을 치운 뒤 방문을 열었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화장실에서 옷을 빨고 있었다.

가녀리고 부드러운 인상이라 어딘지 남쪽 지방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상즈타오가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상즈타오라고 해요.”

여자아이도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쑨위예요.”

낯익은 목소리였다.

바로 상즈타오의 옆방에 사는 여자였다.

“밖에 아직 비 오는데 어디 가려고요?”

“농산물시장에 가서 물건 좀 사려고요.”

“그쪽에 소매치기가 많아요. 베이징에 온 지 얼마 안 됐죠? 혼자 가면 불편할 테니까 제가 같이 가줄게요.”

쑨위는 손을 닦고 종종걸음으로 자기 방에 들어가 우산을 가져왔다.

상즈타오가 물었다.

“오늘 출근 안 해요?”

“저 회사 그만뒀어요.”

쑨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상즈타오보다 앞서 걸으며 길을 안내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은 지어진 지 오래된 낡은 건물이었다.

복도에는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어 어둡고 비좁았다.

상즈타오는 작은 손전등을 꺼내 켜고 쑨위에게 말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마침내 두 사람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상즈타오의 우비에 떨어지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쑨위가 물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저 빙청(冰城) 사람이에요. 쑨위 씨는요?”

“저는 구이저우(贵州) 사람이에요.”

“와, 구이저우! 진짜 멀다.”

상즈타오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빙청에서 태어난 그녀는 대학 시절에도 난징 주변 몇 곳밖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구이저우는 마치 하늘 끝에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쑨위는 상즈타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짜 귀엽다.”

갑작스럽게 칭찬을 들은 상즈타오는 조금 얼굴이 붉어져 헤헤 웃었다.


시장으로 가는 길은 질퍽질퍽했다.

두 사람은 한 발은 깊게, 한 발은 얕게 디뎌가며 걷다가 바짓단에 진흙을 잔뜩 튀긴 끝에야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상즈타오는 그릇과 젓가락, 냄비 같은 조리도구를 샀다.

크기가 제각각인 대야 네 개, 화분 받침대와 화초도 샀다.

그리고 요강(尿壶)도 하나 샀다.

상즈타오가 얼굴을 붉히며 요강을 검은 비닐봉지 안에 집어넣는 모습을 본 쑨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처음 왔을 때 샀어요. 창피한 거 아니에요.”

상즈타오가 설명했다.

“중개인이 그러는데 다른 두 방에는 각각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남자들이 산대요.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못 봐서 좀 무서워요.”

쑨위가 말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요.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지켜야죠.”

쑨위의 말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한 뒤에야 필요한 물건을 모두 살 수 있었다.

시장에는 뉴러우반몐(牛肉拌面)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비 내리는 시장에 진한 국물 냄새가 피어올랐다.

둘 다 조금 배가 고팠다.

상즈타오는 길을 안내해준 것에 대한 답례로 쑨위에게 반몐 한 그릇을 사주었다.

그렇게,

이 도시로 이사 온 둘째 날, 상즈타오에게 친구가 생겼다.


쑨위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뒀고, 남자친구는 도시 반대편 아주 먼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나서 상즈타오의 방 정리를 도와주었다.

원래 허름하기만 했던 방을 두 사람이 새롭게 꾸며놓으니 갑자기 약간의 예술적인 분위기가 생겼다.

쑨위가 옆에서 연신 감탄했다.

“미술 전공했어요?”

“아닌데요!”

상즈타오는 침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자기가 꾸며놓은 방을 감상했다.

그러더니 고개까지 끄덕이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진짜 괜찮은데?”

쑨위는 그런 상즈타오의 순박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상즈타오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사람 자체도 말끔하고 깨끗했다.

마치 아직 아무 글자도 쓰이지 않은 하얀 종이 한 장 같았다.

쑨위는 이렇게 깨끗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자아이를 본 것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몇 살이에요?”

쑨위가 조용히 물었다.

“저 스물두 살이에요. 언니는요?”

“난 스물다섯. 그런데 베이징에는 뭐 하러 왔어요?”

“교내채용(校招)으로 회사에 들어갔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 정식으로 출근해요.”

말하는 상즈타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져 무척 예뻤다.

쑨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는 여기서 가까워요?”

“아직 가보지는 않았는데, 선배 말로는 80분 정도면 도착한대요.”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별로 안 머네요.”


베이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통근시간 80분은 평균 수준이었다.

그 정도면 멀다고 할 수 없었다.

워낙 거대한 도시였으니까.

상즈타오 역시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는 매주 학교에서 쯔진산(紫金山)까지 다녀오곤 했는데, 왕복 네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그러면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상즈타오는 앞으로 시작될 일과 생활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징이라는 도시에도 기대가 컸다.

베개 아래에는 다이어리(手帐)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한 페이지를 꾸몄다.

기차역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탔던 버스에서 받은, 얇다 못해 비칠 정도의 작은 버스표 세 장을 수장에 붙였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었다.

7月10日,北京你好。

7월 10일, 베이징 안녕.


밤이 되었다.

상즈타오는 침대에 누워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마치 다시 남쪽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졸업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 같았다.

허둥지둥 침대에서 뛰어내려 강의실로 달려가던 그 시절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상즈타오는 조금 외로웠다.

침대 머리맡의 어두컴컴한 작은 조명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바깥의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집이 그리웠다.

조금, 학교와 친구들이 그리웠다.

상즈타오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주석

  1. 我是冰城人。

冰城(Bīngchéng)은 글자 그대로는 ‘얼음의 도시’라는 뜻이고,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하얼빈(哈尔滨)의 별칭

2. 隔断间 — 칸막이방

隔断间(géduànjiān)은 기존 주택 내부를 칸막이로 나눠 각각 임대한 방을 말합니다.

그래서 옆방의 전화통화가 들리고, 화장실과 세탁시설을 다른 세입자와 공유합니다.

3. 老尚 — 라오상

老 + 성(姓)은 중국에서 친근하게 사람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문맥상 상즈타오가 자신의 가족, 특히 아버지를 老尚(라오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읽힙니다.

4. 勤工俭学

勤工俭学(qíngōng jiǎnxué)은 학업을 하면서 일을 해 학비나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근로장학생·학업 병행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5. 校招

校招(xiàozhāo)는 校园招聘, 즉 기업이 대학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캠퍼스 리크루팅/교내채용입니다.

중국 취업물이나 현대극에서 굉장히 자주 나옵니다.

따라서 상즈타오는 경력직으로 취업한 게 아니라 졸업을 앞두고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통해 회사에 들어간 사회초년생입니다.

6. 요강 尿壶을 산 이유

베이지에서 사는데 요강을 왜? 꽤 낯선 장면입니다.

첫날밤 상즈타오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다른 방에 취업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남성 두 명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가방 두 개로 문을 막고 소변까지 참습니다.

나도 처음 왔을 때 샀어요. 창피한 거 아니에요.”

라고 합니다.

단순한 개그 장면이라기보다 당시 타지에서 저렴한 칸막이방 생활을 시작한 젊은 여성의 불안감을 보여줍니다.

7. 夜秦淮 — 밤의 친화이

그릇에 夜秦淮风景, 즉 밤의 친화이(秦淮) 풍경이 그려져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친화이(秦淮)는 난징을 대표하는 지역·풍경과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그릇 역시 상즈타오가 난징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베이징까지 가져왔다는 흔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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